조선 후기 궁궐에서 조정의 신하들과 군사들은 엄청난 행렬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이들은 강화도를 향하였는데, 이들은 새로운 왕을 모시러 가는 길이었고, 그 왕은 강화도에 살고 있던 나무꾼이라는 기상천외한 사건이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선 최대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었던 철종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1849년, 한적한 강화도의 한 나루터에 도착한 영의정을 비롯한 관군들은 조용했던 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10대 후반의 남성들을 볼 때마다 이름을 묻고 다녔다. 이를 지켜보던 당시 19세의 한 나무꾼은 점점 본인을 향해 수색망을 좁혀오던 관군들을 피해 도망을 치기 시작하지만 그를 쫓아온 관군에게 포위된 그의 이름을 묻는 영의정에게 이름을 실토하고, 이를 듣고 놀란 영의정은 그를 향해 4번 절을 한다.
바로 그가 그들이 찾던 조선의 새로운 왕이 될 인물, 철종이었기 때문이다.
나무꾼이 왕이 된 이유?
1849년, 조선 24대 왕 헌종이 23세의 나이로 후계자도 없이 사망하면서 궁궐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조정 대신들은 급히 후계자를 찾기 위해 선대 왕들의 가계를 뒤지면서 왕위를 계승할 만한 사람을 찾는데 적절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정조, 순조, 효명세자 모두 대를 이을 아들이 딱 한 명씩밖에 없었기 때문에 효명세자의 아들이었던 헌종 외에는 4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적절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임진왜란 시절의 14대 임금이었던 선조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결국 찾은 인물이 당시 강화도에서 나무꾼으로 살고 있던 철종, 19세의 이원범이었다.
그의 족보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도세자-은언군-이광-이원범으로, 사도세자의 증손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집안은 왕이 될 수 없었던 집안이었는데, 그가 바로 역적 집안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였던 은언군은 그의 아들 상계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다 실패한 후 역모로 몰린 사건이 있었다. 그로 인해 은원군 집안의 다른 식구들은 사약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의 큰형인 이원경이 또 다른 역모에 가담하였다가 발각된 일이 있었다. 이는 민진용 역모 사건으로, 헌종 10년 이후 몰락한 노론 출신 민진용이 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다 발각되어 사사된 사건이다.
집안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역모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 이광을 포함한 철종 가족은 강화도로 유배되고, 왕족의 지위마저 누리지 못한 채 이원범은 나무꾼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조정에서 강화도까지 가서 이원범을 찾은 시점에, 그가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철종이 유배지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다음 사료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현재 임금님은 사냥꾼으로 불리었고
자기 친척 집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장날이 되면 가장 값싼 일꾼 노릇을 하였고
인정머리가 털끝만큼도 없는 주인의 채찍을 거의 매일 맞았습니다.
역적 집안의 자제라는 이유 말고도 그가 왕이 되기 어려웠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철종의 가계도 때문이었다.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유일한 후계 가능자였던 철종은 헌종의 아버지 효명세자와 같은 항렬로, 철종이 왕이 되면 아버지뻘인 철종이 선대 왕인 헌종의 제를 지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유교적 도리를 매우 중요시하는 조선에서 이는 받아들이기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는 25대 왕 철종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 배경에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던 조정 세력이 있었는데, 당시 세도정치로 조정의 모든 권력을 잡은 가문들이었다.
세도정치는 정조 승하 후 어린 아들이었던 순조가 다음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병약해진 정조가 어린 아들이 신하들에게 휘둘릴 것을 염려한 정조는 안동 김씨 김조순의 딸과 아들을 결혼시켜 후계자를 지키도록 조치하였다. 이로 인해 안동 김씨 집안은 어린 왕의 장인으로 조정의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세도정치는 순조의 뒤를 이어 매우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헌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이 필요했는데, 그 인물 또한 헌종의 할머니였던 안동 김씨 순원왕후가 하게 되었다.
이렇게 권력을 독점한 안동김씨는 온갖 뇌물을 받고 관직을 하사하는 매관매직을 일삼았고, 넘치는 뇌물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 가문은 뇌물을 관리하는 사무실을 12채나 가질 정도로 그 세력이 엄청났다고 전해진다.
본인들의 엄청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새로운 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고, 겨우 찾아낸 왕족인 철종은 그 누구보다 왕위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안동 김씨가 철종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는 상당했지만 그중 제일 큰 문제는 그가 역적 집안의 자제라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동 김씨는 철종을 헌종의 할아버지였던 순조의 아들로 호적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순조의 부인이자 선대 왕까지 수렴청정을 계속해오던 순원왕후의 수렴청정도 명분상 가능해졌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철종은 단 하루 만에 강화도의 나무꾼에서 조선의 국왕이 되었다.
왕이 된 철종
철종이 즉위하자 그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로 철종의 배움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던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순원왕후는 철종을 교육하는 데 몰두하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철종 할아버지의 죄를 사면하고, 어머니의 신분을 올리는 등 신분 세탁을 시도하면서 철종이 역적 가문의 자제였다는 기록 자체를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철종 왕의 자질을 의심할 수 없도록 조치하였다.
이렇게 철종의 왕위 적통성을 잡아나가면서 순원왕후는 금혼령을 내려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계자를 보는 것에 힘쓰기 시작한다.
1년간 이어진 간택령에서 철종의 아내로 간택된 사람은 안동김씨 가문의 자녀 철인왕후이다.
이렇게 철종에 이어서까지 안동김씨 가문이 조정을 장악하면서 그 영향을 온몸으로 받은 이들이 바로 백성들이다.
당시 크게 문제가 되었던 것이 전정, 군정, 환곡으로 구성된 삼정의 문란, 즉 삼정문란이다.
전정은 소유한 토지를 기준으로 토지에서 수확한 곡물의 일정량을 세금으로 내는 제도이고, 군정은 군포라는 옷감을 세금으로 납부하였을 때 병역을 면제해 주던 제도였으며, 환곡은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환수하던 제도이다.
백성들을 위한 좋은 제도였던 삼정을 이용해 안동김씨에게 뇌물을 바치고 관직에 오른 탐관오리들은 백성을 수탈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방법으로 전정은 허위 땅문서를 만들어 있지도 않은 땅에 대한 세금을 내야 했고, 군포는 죽은 사람에게 까지 세금을 징수에 군포를 거두어들였으며, 환곡은 빌려줄 곡식에 모래를 섞어 주면서 환수받을 때는 온전한 곡식으로 받으며 온갖 방법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화도에서 가난한 나무꾼으로 살던 철종은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며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사실상 조정에서 아무런 힘도 없고, 본의 아니게 안동김씨 가문과 운명을 함께 하게 된 철종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철종의 반격
강화도령이라 불리며 왕이지만 안동김씨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던 철종에게도 수렴청정이 끝나는 것을 시점으로 그들에게 반격을 가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철종은 이를 틈 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현재 삼정이 모두 병들어서 민생이 고달프고 초췌해졌다
슬프다
우리 적자(백성)는 무엇으로 생계를 꾸리겠는가
-철종실록
이는 안동 김씨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부패한 삼정을 개혁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처음으로 철종은 안동김씨 세력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을 사면하여 그들에게 대항할 세력을 키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국정 전반을 총괄했던 실질적인 최고 정무 기관이었던 비변사가 안동김씨 세력이 장학한 탓에 그 시도마저도 무산되고야 말았다.
이에 크게 실망한 철종은 '이 나라가 김씨의 나라인가, 이 씨의 나라인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실낱같은 희망, 잔인한 현실
안동김씨 세력에 의해 철저히 고립되어 가던 철종에게도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날 철종은 철종 어머니 염 씨의 족보를 보게 되는데, 이 족보에서 철종에게 유일한 혈육이자 외삼촌 염종수가 살아있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철종은 그를 바로 궁으로 불러들여 과거 이순신이 맡았던 수군절도사에 파견했다.
하지만 철종이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외삼촌 염종수는 본인과 성씨가 같고 본관이 달랐던 철종의 어머니 염 씨 집안의 대가 끊긴 것을 알아내고 그 족보를 구해 본인의 이름을 집어넣은, 이름하여 가짜 외삼촌 행세를 한 파렴치한 인물이었다.
족보를 조작할 뿐만 아니라 철종의 어머니는 용담 염 씨, 염종수는 파주 염씨였는데, 그는 철종 어머니 염 씨의 묘비에 새겨진 용담이라는 글자를 긁어내고 파주로 바꾸는 있을 수 없는 짓까지 벌이게 된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철종은 매우 실망하였고, 마음아파하며 자신의 과오를 부끄러워하였으며, 크게 분노한 철종은 염종수를 즉시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는 철종에게 매우 큰 타격이 되는 사건이 되었다.
철종 13년, 온갖 수탈을 견디다 못해 터진 농민들은 들고 일어섰는데, 이를 임술농민봉기라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70여 개 도시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이를 지켜본 철종은 다시 한번 백성을 위한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철종은 삼정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기관인 삼정이정청을 설립하고, 삼정의 개혁을 명하였다.
삼정이정척은 환곡을 완전히 폐지하여 백성들의 수탈을 더 이상 못하게 하려 했지만 이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환곡을 폐지하여 진짜로 토지를 소유한 양반들에게 세금을 걷고자 하였지만, 양반들은 당연히 이를 거부했고, 그 세금은 고스란히 백성에게로 전해지면서 성과 없이 폐지되고야 말았다.
철종의 최후
삼정이정청 폐지 이후 병상에 앓아누운 철종은 1년 만에 후사도 보지 못한 채 33세의 나이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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